고려장

김기영 감독이 <현해탄은 알고 있다> 이후 2년간 공백을 거치고 내놓은 <고려장>은 설화 정도로나 내려오던 고려장 풍습을 소재로 1963년 제작한 작품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려장 풍습이 실제로는 우리 역사서 등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일제시대를 거쳐오며 설화 정도로나 내려오던게 역사적 사실마냥 둔갑되어 내려오는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이런 걸 토대로 영화가 제작되다보니 논란이 안 생길수가 없다. 그렇지만 영화는 소재 자체를 떠나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안겨준다.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강렬한 글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듯 하면서도 어딘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탈 시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그 세계관에는 극단적인 가난이 자리잡았으며 자식이 아버지를 버리는게 당연시되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도덕적 윤리관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강렬하기 이를데없는 배경설정은 당시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오늘날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체 이런 극단적인 배경설정의 영화가 어떻게 심의를 통과했을까 생각도 절로 들었다.

<고려장>은 10형제와 과부의 아들 구룡의 갈등을 주축으로 삼고 있다. 10형제는 마을의 권력자 무당의 예언 때문에 구룡을 괴롭히고 구룡은 이로 인해 절름발이 신세가 된다. 이후 장성한 구룡은 벙어리 여인과 혼인을 하지만 10형제의 손에 의해 부인이 죽게 되고 구룡은 다른 여인과 재혼을 한다. 가뭄이 심해지자 10형제는 구룡의 부인을 인질삼아 구룡의 어머니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어머니는 결국 구룡의 지게에 업혀 계곡에 버려저 독수리에게 쪼여 세상을 뜨게 되고 10형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결국 구룡의 부인을 죽인다. 이후 구룡은 대참살극을 시작한다.

이런 파격적인 전개는 엄청난 강렬함을 안겨준다.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은 당대 한국영화가 시대의 도덕관념과 사회상에 얼추 얽매여 기능하던 모습과 비교했을때 이례적이라 할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한 대부분이 세트로 촬영된 영화는 이런 강렬함을 한층 보태준다. 마을 세트, 성황당, 대장간 등 미술에도 크게 신경을 써 당대 한국영화를 초월했다 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이 느껴졌으며 특히 죽음의 계곡세트는 허술함이 느껴지면서도 그로데스크함까지 더해졌다.

<고려장>은 말 그대로 당대 한국영화를 뛰어넘은 김기영 감독의 또다른 걸작이다. <하녀>의 명성이 워낙 대단해 인지도는 덜할지라도 김기영 세계를 깊게 파고 드는데 거쳐야 할 필수코스로 생각한다.

<블루레이>

김기영 컬렉션 DVD 출시 당시 포함될 당시에도 양호한 화질을 보여줬다는 평이나, 화면비 문제로 지적받은 적이 있었다. 블루레이에서는 4K 복원과 더불어 이런 문제를 수정하였다. K 복원을 통해 잡티 하나까지 꼼꼼하게 수정한 고화질은 1963년작이라곤 믿기지 않을만큼 감탄이 나오고 영상자료원의 노고에 더더욱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광고하던 역대급 서플먼트라고 하기에는 쪼금 부족하지만 김기영 타이틀에서만큼은 2배 공을 들이는 영상자료원 답게 훌륭한 부가영상을 수록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코멘터리가 영화의 이해를 돕고 별도로 심의대본 레플리카가 소장욕구를 돋군다.

* 음성해설 : 정성일 (영화평론가 & 감독)
* 자막 : 한국어, 영어
- 나는 트럭이다 (김기영 단편)
* 자막 : 한국어, 영어
- 복원 전후 영상
- 김기영 영화 예고편 모음
- 이미지 갤러리

또한 김기영 감독 영화 예고편을 HD 리마스터링하여 수록하였고(별도 스크래치 제거 등의 복원은 하지 않았다), <하녀>에도 수록된 바 있는 단편 <나는 트럭이다>도 HD 리마스터링을 통해 재수록했다. 다만, 문제는 양호한 필름 상태에 비해 영상이 날라가고 사운드만 남은 결손 부분이 25분에 달한다는 것이다. VOD 공개 당시에는 결손 부분은 아무런 해설없이 검은색 화면에 달랑 사운드만 수록하여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블루레이판에서는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을 첨가하였다.